김영랑 시 모음 * 사개틀닌 고풍의 툇마루에 - 김영랑 사개틀닌 고풍(古風)의 툇마루에 없는 듯이 앉아 아직 떠오를 기척도 없는 달을 기둘린다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런 뜻 없이 이제 저 감나무 그림자가 사뿐 한 치씩 옮아오고 이 마루 위에 빛깔의 방석이 보시시 깔리우면 나는 내 하나인 외론 벗 가냘.. 시인 詩 모음 2009.06.16
정양 시 모음 * 건망증 - 정양 창문을 닫았던가 출입문은 잠그고 나왔던가 계단을 내려오면서 자꾸만 미심쩍다 다시 올라가 보면 번번이 잘 닫고 잠가놓은 것을 퇴근길 괜한 헛걸음이 벌써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도 미심쩍은 계단을 그냥 내려왔다 누구는 마스크를 쓴 채로 깜박 잊고 가래침도 뱉는다.. 시인 詩 모음 2009.06.15
신경림 시 모음 * 가을 비 - 신경림 젖은 나뭇잎이 날아와 유리창에 달라붙는 간이역에는 찻시간이 돼도 손님이 없다 플라타너스로 가려진 낡은 목조 찻집 차 나르는 소녀의 머리칼에서는 풀냄새가 나겠지 오늘 집에 가면 헌 난로에 불을 당겨 먼저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셔야지 빗물에 젖은 유행가 가락.. 시인 詩 모음 2009.06.09
담배 시 모음 * 담배 연기처럼 - 신동엽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갔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멀리 놓고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네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갔네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은 많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멀리 놓고 생각만 하.. 시인 詩 모음 2009.06.08
동백꽃 시 모음 * 선운사 동백꽃 -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 * 김용택시집[.. 시인 詩 모음 2009.06.03
안도현 시 모음 2 * 무식한 놈 - 안도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 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 길 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대라고 부를 사람에게 그 길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갈 수 없는 끝없는 길을 * 봄이 올 때까지는 .. 시인 詩 모음 2009.06.03
복효근 시 모음 * 나마스테 - 복효근 나마스테라는 말이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경배합니다'라는 뜻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코끝이 찡하고 나를 울렸다 내 안의 신이 나를 깜짝 깨웠기 때문이다 3억3천만의 신이여 그 신들이 부르는 또 3억 3천만의 신이여, 그 신이 부르는 또 다른 3억 3천만의.. 시인 詩 모음 2009.06.01
이정하 시 모음 * 별에게 묻다 - 이정하 밤이면 나는 별에게 묻습니다 사랑은 과연 그대처럼 멀리 있는 것인가요 내 가슴 속에 별빛이란 별빛은 다 부어놓고 그리움이란 그리움은 다 일으켜놓고 당신은 그렇게 멀리서 멀리서 무심히만 있는 겁니까 * 찔레에게 아무 기별하지 말자 그리움만으로 한 세상 .. 시인 詩 모음 2009.05.26
이재무 시 모음 * 적막, 먹빛으로 번진다 - 이재무 부소산 에돌아가는 강물 퍼서 더운 몸 식히고 탑돌이하며 천 년 묵언 듣는다 흐르는 물 소리쳐 울게 한 마음의 냇가 솟은 돌들의 뼈아픈 시간들을 탑신 흘러내려온 그늘에 담군다 항아리 속 오래 묵힌 간장 같은 적막, 먹빛으로 번진다 * * 감나무 감나무 .. 시인 詩 모음 2009.05.22
손택수 시 모음 * 방심(放心) - 손택수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 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 지나가 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 시인 詩 모음 2009.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