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시 모음 * 그집 앞 - 기형도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내들은 있는 힘 다해 취했네 나의 눈빛 지푸라기처럼 쏟아졌네 어떤 고함 소리도 내 마.. 시인 詩 모음 2008.12.24
설일(雪日) - 김남조 * 설일(雪日) - 김남조 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 좋아하는 詩 2008.12.24
눈 오는 마을 - 김용택 * 눈 오는 마을 - 김용택 저녁 눈 오는 마을에 들어서 보았느냐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마을이 조용히 그 눈을 다 맞는 눈 오는 마을을 보았느냐 논과 밭과 세상에 난 길이란 길들이 마을에 들어서며 조용히 끝나고 내가 걸어온 길도 뒤돌아볼 것 없다 하얗게 눕는다 이제 아무것도 더는 소.. 김용택* 2008.12.22
빈 들녘처럼 - 법정 * 빈 들녘처럼 겨울은 우리 모두를 뿌리로 돌아가게 하는 계절 시끄럽고 소란스럽던 날들을 잠재우고 침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계절 그동안 걸쳤던 얼마쯤의 허세와 위선의 탈을 벗어 버리고 자신의 분수와 속얼굴을 들여다보는 계절이다 이제는 침묵에 귀를 기울일때이다 소리에 .. 법정 스님 2008.12.22
바람 - 박경리 * 바람 - 박경리 흐르다 멈춘 뭉게구름 올려다보는 어느 강가의 갈대밭 작은 배 한 척 매어 있고 명상하는 백로 그림같이 오로지 고요하다 어디서일까 그것은 어디서일까 홀연히 불어오는 바람 낱낱이 몸짓하기 시작한다 차디찬 바람 보이지 않는 바람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뚫고 지나가.. 좋아하는 詩 2008.12.21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 도종환 *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 도종환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자연의 하나처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서둘러 고독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기다림으로 채워간다는 것입니다 비어 있어야 비로소 가득해지는 사랑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 도종환* 2008.12.18
맨발 - 문태준 * 맨발 -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 좋아하는 詩 2008.12.18
화분 - 문태준 * 화분 - 문태준 사랑의 농원에 대하여 생각하였느니 나는 나로부터 변심하는 애인 나의 하루와 노동은 죽은 화분에 물을 부어주었느니 흘러 흘러갔어라 먼 산 눈이 녹는 동안의 시간이 죽은 화분에 물을 부어주었느니 풀이 사라진 자리에 다시 풀이 와 어떤 곳으로부터 와 풀은 와서 돋.. 좋아하는 詩 2008.12.18
百年 - 문태준 * 百年 - 문태준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빈 의자처럼 쓸쓸히 술을 마셨네 내가 그대에게 하는 말은 다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 그제는 하얀 앵두꽃이 와 내 곁에서 지고 오늘은 왕버들이 한 이랑 한 이랑의 새잎을 들고 푸르게 공중을 흔들어 보였네 단골 술집에 와 오늘 .. 좋아하는 詩 2008.12.18
주먹눈이 내리는 해변을 걸어가오 - 문태준 * 주먹눈이 내리는 해변을 걸어가오 - 문태준 주먹눈이 내리는 해변을 걸어가오 신(神)은 변성(變聲)을 하오 나는 무일푼이오 당신은 애써 해변 묘지를 보여주고 돌아갔소 마음이 무일푼이 되어 행복하오 주먹눈은 웅얼웅얼하오 신은 공중에 예배당을 지으오 얼금얼금하오 사람에게 주먹.. 좋아하는 詩 2008.12.18